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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유토피아 <세속적 쾌락의 정원>

반지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유토피아 <세속적 쾌락의 정원>

: 단지 옷을 벗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지상의 천국은 무분별한 쾌락의 도가니로 둔갑한다.


 반지원 / 작가


세속적 쾌락의 정원은 낙원, 지옥, 그리고 이 사이의 환상적인 지상공간으로 추정되는 화면을 뒤덮는 상상적인 형상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쾌락을 누리는 나체의 인간들로 가득한 중앙 패널은 가장 의미가 알쏭달쏭하면서도 보는 이의 본성적인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선뜻 금기의 쾌락을 연상시키며 지상의 인간들에게 도덕적인 경고를 주는 듯한 표면상의 목표는 분명해보이면서도, 혼합적이고 의미가 다소 모호한 요소들로 인해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종교화로서의 세폭화 배후에는 제목으로 명명되다시피 세속적 쾌락에 대한 보스 자신만의 유토피아적 관점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놀이동산이 떠오를 만큼 쾌락으로 엉겨붙은 세속의 장면은 지상을 대변하면서도 지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인 듯하다. 지상의 문명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벌거벗은 채로 뒤엉켜 놀이에 열중하는 인간들은 분명히 음란하고 타락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예컨대 화면 속의 그들의 눈이 되어 보자면 그들 스스로는 그다지 음란하지도 타락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그러한 의식 자체도 없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심판이 닥쳐오기 전까지 그들의 세계에서는 살인도, 강도도, 강간도, 폭력이나 분쟁도, 그 어떤 다른 죄악도 없다. 세속이라고 일컫기엔 이곳엔 실제의 세상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그늘이 없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들은 벌거벗었으면서 스스럼없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다. 그들은 무릇 선도 악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들 앞에 펼쳐진 세계를 무한히 즐기고 있다. 그들의 삶에는 하루하루가 동식물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놀이와 열정적인 사랑으로 가득하며, 순전히 즐거움을 위해서 무수히 많은 장난감들을 개발한다. 나에게 마침내 이것은 마치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에덴동산과도 같다는 유추에 이른다.

결국 보스의 유토피아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고 자손을 번성시킴으로 해서 연장되고 확장된 거대한 에덴동산이 아닐까? 사뭇 지루해 보이는 낙원도 아니고 무시무시한 징벌로 가득한 지옥도 아닌,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가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에덴동산에서의 삶을 보스는 마음속으로 꿈꿔왔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보스가 정의내린 진정한 세속적 쾌락이지 않았을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속세의 자연배경은 낙원의 배경과도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렇다면 보스는 도덕적 교훈으로만 작품을 이해하는 당대인들의 고정관념을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아직도 우리들은 낙원보다도 죄악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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